월급쟁이의 절반인 비정규직, 유통 대기업에 상권을 빼앗기고 있는 지역의 소상공인들, 등록금 대출을 끼고 졸업했으나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들….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열심히 일할 수 없는 사회구조가 문제이다. 일할 권리마저 돈벌이에 혈안이 된 대기업들에 전부 빼앗기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서민금융제도는 애초에 소득창출 능력을 빼앗긴 취약계층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 전부다. 안정된 소득을 원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는커녕, 급전이라도 빌려 쓰라고 신용카드를 쥐여주고 고금리 대부업체에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해온 것이다.

본질적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사회 배경하에서 돈을 빌려주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당연히 그들은 연체자가 될 운명이다. 마치 서민을 위한다는 듯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주겠다는 서민금융. 하지만 저금리라는 것도 상대적이다. 카드사와 대부업체에게 물던 25~39% 이자가 10% 전후로 줄더라도 서민들에겐 역시 부담이다.

자 이쯤 되면 결과는 명백하지 않은가. 서민금융으로 급한 카드 대출과 대부업 대출을 일부 해소했다고 치자. 그런 뒤 그들은 다시 새 출발을 계획한다고 가정하자. 과연 그들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서민금융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갚을 능력이 없었다. 최근 치솟는 서민금융의 연체율이 이를 방증한다. 햇살론이 8%를 넘어서고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인 미소금융도 4%의 연체율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애초 소득창출 능력이 없는 서민에게 ‘복지와 일자리’ 정책을 선택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서민금융의 문제가 이런데도 일부 언론에서는 제도 자체의 문제보다는 연체하는 사람들을 향해 비난의 칼을 뽑았다. 애초에 갚을 생각 없이 빌린 후, 먹고 튀었다는 것이다.지난 8월24일 모 중앙일간지는 햇살론 관련 기사를 쓰면서 ‘대출받자마자 먹튀’라는 제목을 실었다. 마치 햇살론의 연체율이 채무자들의 의도적인 상환 회피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햇살론을 빌려 쓰는 사람들을 보면 소득과 기존 채무, 연체 기록 유무와 최근 채무 등에 따라 여러 제한을 받는다. 최고 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그렇게 퍼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여러 제한 조건으로 인해 대출이 승인된다고 하더라도 500만원가량의 소액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먹튀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이득을 취한 뒤 도망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한 후 엄청난 차익을 실현했을 때 언론에 이 표현이 등장했다. 그런데 당장 생계비가 없고 갚을 능력이 없어 못 갚는 사람에게 먹튀라는 표현은 지나치다. 정말 겨우 500만원 떼먹고 금융권으로부터 채무 독촉에 시달리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서민이 그렇게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물론 일부 의도적으로 안 갚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부정한 결과는 언제 어느 때이건 발생할 수 있다. 마치 연체율 8% 대부분이 서민들의 의도적인 부정행위의 결과인 양 몰아붙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연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만든다.

그들이 말하는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정확한 근거로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금융권의 과도한 우려가 주로 인용될 뿐이다. 금융권의 과도한 우려로 인해 채무자들의 새 출발을 위한 제도들이 제 구실을 못하게 만든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채무자들을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모든 가용소득을 빚 갚는 데 쓰게 하는 잔인한 채무조정을 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수많은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패자부활 안전망도 없이 자살 충동에 내몰리고 있다.

과잉대출을 일삼는 채권자의 책임은 외면한 채 채무자만 죄인을 만들어버리는, 말 그대로 ‘잔인한 킬러 자본주의’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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