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박모씨는 10년 전 서울 동대문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열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결국 8000만원의 빚만 진 채 문을 닫아야 했다. 가까스로 일자리를 찾아 새출발을 계획했지만 100만원가량의 소득으로는 기존의 빚을 갚는 게 불가능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워크아웃(채무조정)을 신청하고 월 상환 금액을 조정했다.


그러던 중 한 신용정보회사에서 박씨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며 급여통장을 압류했다. 채무자가 기억하지 못한 오래된 빚이 여기저기 부실채권으로 팔리면서 알지도 못하는 신용정보회사로부터 이런 조치를 당한 것이다. 한 번의 실패로 추노꾼과 같은 추심회사의 끝나지 않는 빚 독촉에 직면하면 패자 부활이 불가능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박씨는 서울시 금융복지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급여 압류 해제 과정을 밟았다. 급여통장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압류 방지를 뒤늦게 신청하면서 절차가 너무 복잡해 도움을 주는 상담사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니 심리적으로 고통에 노출돼 있는 나약한 채무자가 스스로 이런 조치를 할 수 있을까.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에 대해서까지 사고팔리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당신이 내게 갚을 돈이 있소’ 하고 무섭게 다가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노예 문서’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고팔리고, 한 번 노비 문서를 확보한 추노꾼이 노비를 끝까지 추격하는 것처럼 21세기 채무자는 새로운 노비 신세가 아닐까.

특히 부실채권 거래시장은 최근 대부업체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혼탁해지는 분위기다. 대부업체는 부실채권을 가급적 헐값에 사서 지독하게 독촉함으로써 수익률을 올리려 할 것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채권을 사들일 수 있는 대부업체를 신용회복위원회 협약에 가입한 20개 회사로 제한했다. 이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부실채권 시장은 계속 확장 중이다. 지난해 6월 말에만 이들 대부업체의 매입 채권 규모가 2569억원으로 대부업체 보유채권 잔액의 절반(49.4%)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부실채권은 워낙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제대로 추심하면 큰 수익을 거두는 게 가능하다. 박씨의 경우 500만원짜리 과거 빚을 신용정보회사에서 거의 1%인 5만원에 매입했을 수 있다. 원금을 다 받아낸다면 수익률은 엄청나다.

수익률이 높다는 이유로 부실채권 매입으로 톡톡히 한몫 챙기려는 탐욕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다수의 채무자들이 탐욕에 눈먼 추심업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부실채권 시장은 남의 눈물로 돈을 벌겠다는 탐욕에 눈먼 자들의 ‘어두운 재테크 시장’이나 다름없다.

채권 양수도에 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우선 지나치게 오래된 채권이 거래되거나 거래 과정이 채무 당사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옳지 않다. 채무 당사자에게 채권이 거래되는 과정에 대해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공약 사항으로 약속한 내용이다. 공약으로 제시할 정도이니 실현 불가능한 정책은 아닌 듯하다.

또한 부실채권을 매입했더라도 채무자가 신용회복 혹은 회생·파산 진행 중이라면 부실채권의 채권 효력을 중지시켜야 한다. 부실채권을 매입한 채권자는 억울하겠지만 그만큼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당사자가 더 신중한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현재 채무자가 새출발을 위해 채무 재조정을 진행하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부실채권을 매입했다면 그만큼 위험한 투자를 한 셈이다. 그리고 투자의 실패는 투자자가 짊어지는 것이 맞다는 시장원리에 따라 손실이 부실채권 매입 당사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런 위험이 전제돼 있다고 해야 부실 채권 양수도 시장이 탐욕에 눈이 멀어 마구잡이식으로 확장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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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ada 2013.05.03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라서 양국 사이의 번역활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