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재원 부족으로 폐지되기 전까지 재형저축은 사회 초년생이 첫 월급을 타게 되면 제일 먼저 가입하는 저축상품이었다. 당시는 고도 성장기였기 때문에 기본 금리가 연 10%를 넘나들었다. 재형저축은 기본 금리에 정부의 근로자 재산형성이라는 정책적 의지가 반영돼 기업과 정부의 장려금이 보태졌다. 그 결과 연 14~16.5%의 고금리를 챙길 수 있었다.

미국의 예일대 교수인 로버트 쉴러 박사는 정부의 정책이 가계 저축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정책이 가계 저축률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경우 당연히 국민은 저축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재형저축만 보더라도 세제 혜택과 더불어 보너스 금리가 주어지는 상품에 대해서 대다수의 직장인이 첫 월급과 동시에 가입한 추억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동시에 만기가 돼 목돈을 손에 쥐었을 때는 저축의 효용가치를 경험케 함으로써 저축의 동기가 상승한다. 1976년 시작된 재형저축이 1995년 재원부족으로 폐지되었음에도 거의 20년 가까이 이어진 가계 저축 습관은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높은 저축률을 유지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가계는 저축을 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의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저축률은 2.7%까지 주저앉았다. 가계 부채가 1000조원을 넘나들며 심각한 가계 재정위기가 전제돼 있는 상황에서 저축률이 낮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저축률이 2.7%라는 수치는 낮은 저축률이라는 해석 외에도 가계가 비상금이 전혀 없어 곧 빚이 더 늘어나거나 파산에 직면할 위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6일 18년 만에 재형저축이 부활한다. 문제는 이 상품이 7년 만기, 다시 말해 중장기 상품으로 설계돼 출시된다는 점이다.


가계 저축률이 하락한 데에는 저성장 저금리 경제 환경변수가 작용한 측면이 크지만 동시에 금융권의 과도한 투자 마케팅도 한 몫을 했다. 저금리 조건에서도 여전히 저축의 효용가치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저축하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을 확장시켰다. 더 나아가 가계 저축 재원을 펀드투자와 대출을 통한 주택 구입 즉 레버리지(대출을 지렛대 삼아 투자함으로써 큰 수익을 거두는 투자 기법) 투자로 전환할 것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펀드 투자 열풍에 휩싸였고 무리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것이 저금리 시대의 재테크라고 믿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펀드 투자로 저축보다 괜찮은 투자 수익을 챙긴 사람보다 원금 손실을 맛본 사람들이 많았다. 저축이 아닌 빚을 지렛대 삼아 투자한 주택의 가치는 현재 폭락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 가정경제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가계 저축을 독려하기 위한 재형저축이 중장기 상품으로 설계되어 출시되는 것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중장기 저축 상품 또한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상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가계 저축률이 크게 하락함으로써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가계 재산 형성이 되지 않을 위험이 아니다. 재산 형성보다 급한 것은 만약을 대비한 유동성 현금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현재 가정경제는 우선적으로 단기 저축을 통해 비상금을 확보해야 한다. 가정경제에서 비상금은 일종의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 역할을 한다. 가계 부채가 심각해지면서 은행권이 신규 대출을 축소하고 카드사마저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이는 이전과 같은 쉬운 신용 창출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상금이 없는 상황에서 다소 경직된 신용국면은 만약의 경우 가계에 소득 중단이나 질병 등의 목돈 재원이 필요한 외부충격이 가해지면 결국 고금리 악성 대출에 의존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것은 곧 파산에 이를 위험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동성이 부족한 정부의 중장기 저축 상품에 대한 인센티브는 가계 재정 상태에 별 문제가 없는 소수의 계층에게만 유용할 것이다.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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