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핵심 가계부채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 이르면 이달 출범하면서 기금 출범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부작용 중 가장 크게 지적되는 내용이 채무자에 대한 도덕적 해이 논란이다. 즉 채무자가 국민행복기금이 곧 풀릴 것이라 예상하면서 채무 상환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신용정보 회사들의 지난해 말 채권 추심 매출 감소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채무자 중 일부는 정부의 빚 탕감 정책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선거 당시 새누리당 선거캠프에서는 채무자의 기대심을 선거에 충분히 활용했다. 사실상 국민행복기금은 이미 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신용회복기금을 통해 2008년부터 진행해온 프로그램을 수정, 확대한 내용이었다. 캠코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은 4년 동안 48만여명의 채무를 조정했다. 이러한 캠코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대상과 채무 면책 범위를 확대해 선거 공약으로 설계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선거캠프는 선거 당시 신용회복 프로그램이라는 추상적인 표현 대신 ‘세금 투입 없이 빚 탕감’이라는 대단히 자극적인 표현으로 정책 공약화했다. 빚 탕감이란 공약은 채무자를 자극하기 충분했고 이는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연체를 반복하면서 채권 추심의 고통에 놓여 있는 채무자에게 탕감이란 표현은 반가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채무자는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기대심만으로 현재 원리금 상환을 의도적으로 회피할 만큼 대담하지 않다. 연체가 시작됨과 동시에 시작되는 독촉전화와 추심행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행복기금의 수혜 대상은 우선 1년 이상의 장기 연체자이다. 지금까지 채무 상환을 성실히 해 오던 채무자가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 상환을 회피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은 1년 이상의 채권 추심을 견디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현재 채무 상환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1년간의 채무 독촉을 감수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당장 채무 상환이 곤란한 채무자, 즉 새로운 빚을 내서 기존의 빚을 갚아야 할 상황에 놓여 있는 채무자라면 과감히 연체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채무자에게 필요한 신용회복 과정이다. 채무 상환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재정상태라면 과감히 채무 조정 절차를 선택하는 것이 채무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용하다. 채무자가 기존 빚을 갚기 위해 금리가 더 비싼 새로운 대출 상품을 이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키우게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다소 과장스러운 표현이지만 빚 탕감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시그널은 채무자가 현재 자신의 채무 상환 능력을 냉정하게 따져보게 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금융권에서 지적하는 채무자 모럴 해저드의 위험은 국민행복기금 출범에 있어 주요한 위험이 아니다. 오히려 채무자가 아니라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가 더 문제이다.

최근 대부업체들 중 일부는 ‘국민행복기금으로 돈이 풀리니 돈 빌려 써라’라는 식의 대출 영업을 진행한다. 국민행복기금으로 탕감된 만큼 다시 돈을 빌려주거나 지금 빌려쓰면 국민행복기금으로 탕감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대출 영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기존의 햇살론이나 바꿔드림론과 같은 서민금융 프로그램에서 나타난 오류와 비슷하다. 햇살론이나 바꿔드림론을 이용한 소비자들은 이후 줄어든 대출만큼 다시 카드론 한도가 발생해 추가로 카드 대출을 받거나 대부업 대출을 이용하는 오류를 반복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에서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대출 행태에 대한 규제 관리는 하지 않은 채 채무자들의 빚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그만큼 금융기관과 대부업체의 약탈적 대출 여지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과도하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해야 한다.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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