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미국 사회는 금융권 탐욕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금융 소비자의 내집 마련을 위해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대출을 해준 금융사의 행태를 약탈적이었다고 규정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금융 소비자의 내집 마련에 금융사가 고맙게 대출해준 것인데 그 행위를 약탈적이라고 하다니 대단히 황당한 비판처럼 들린다. 금융 소비자의 부채 상환 능력을 신중하게 살핀 후 책임 있는 대출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신용을 공급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금융권은 사회적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의식은 법 제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미 1994년 약탈적 대출 규제를 위해 자택 자산보호법을 제정한 미국 정부는 최근에 책임 대출법을 통해 약탈적 대출 방지를 강화했다. 이러한 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은 돈을 빌리는 사람보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권의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 정서가 미국 사회에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채무자가 돈을 빌려 갚지 못하는 것은 채무자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채권자에게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상식이 보편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더해가지만 여전히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목소리가 거의 없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당시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을 둘러싸고 채무자를 압박하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도덕적 비난을 통해 성실 채무자의 억울한 정서를 자극한다.

최근 언론에 등장하는 금융권 관계자의 말은 연체가 늘어나거나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 중도 탈락자 비율이 증가하는 것도 모두 채무자가 채무 버티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연관짓는다.

그러나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 재조정을 받은 채무자가 조정된 빚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것은 국민행복기금 이야기와 무관하다. 이미 지난해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실의 조사를 통해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채무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조정을 하기 때문에 중도 탈락률이 높을 수밖에 없음이 밝혀졌다. 또한 연체율 증가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가계부채가 악화하는 모든 것이 정부의 구제 정책 때문에 채무자가 타락하고 있는 것처럼 연관짓는 것은 채무 독촉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채무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행복기금은 정확히 정부가 빚을 대신 갚아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금융권에서 연체가 길어짐에 따라 부실채권으로 분류해 손실처리한 뒤 싸게 팔아버리는 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매입하는 것이다.

대출의 원금 전체를 기금이 지불하는 것이 아니고 채권의 연체 기간이나 원금 등을 판단해 매입 가격이 결정난다.

최근 자산관리공사에 따르면 채권의 매입 가격 비율은 최고 23.23%에서 최저 1.10%까지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즉 채권을 갖고 있는 금융회사가 70~99%까지 손해를 보고 싸게 판다는 것이다. 이렇게 싸게 매입한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서 다시 채무 재조정한 뒤 신용회복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성실 채무자가 억울해할 일이 아니다. 세금을 투입하는 것도 아니고 신용회복 대상이 되는 채무자는 신용의 불이익을 크게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형태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은 금융 소비자가 한 번의 실패로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새 출발을 위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이다. 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권은 채무 구제 프로그램마저 채무자에게 도덕적 멍에를 씌운다.

그러나 오늘의 심각한 가계 빚에 대한 책임은 금융권에 더 크게 물어야 한다. 책임 대출은커녕 오히려 ‘빚 권하는 영업’을 통해 해마다 천문학적 이익을 챙겼음에도 이에 대한 조금의 반성도 없는 뻔뻔한 금융권에 사회적 비판이 드물다는 게 대단히 아쉽다.

<제윤경 | 에듀머니 대표>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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