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심지어 죄악으로 간주했다. 구약 성경에는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그에게 채권자같이 이자를 받지 말라’는 구절도 있다. 그나마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금융부자에 의해 뒷돈이 뿌려지고 나서야 ‘차입자를 가혹하게 옥죌 목적으로 대출할 때’에 한해서만 대금업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만큼 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는 다른 사람의 경제적 곤란을 전제로 돈을 번다는 차가운 눈총이 깔려 있었다. 채권자가 너무 많은 힘을 가질 때 채무자에게 가혹해질 수 있다는 신용의 무서운 원리를 일찍부터 눈치챈 것이 아니었을까.

이에 비해 한국은 채권자의 천국이다. 중세시대의 신성모독으로 간주된 금융업이 뼈빠지게 일해 돈버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돈벌이를 한다. 큰 돈벌이는 금융권이 빚에 대해 사람들에게 달콤한 미끼를 던지면서 극대화되었다. 한때 금융권은 빚도 자산이라고 빚을 예찬해가며 돈을 빌려 쓸 것을 강조했다. 경제와 금융에 대해 무지했던 사람들은 집을 사기 위해, 혹은 실직 상태에서의 생계비를 위해, 일자리가 없어 울며겨자먹기 심정으로 창업시장에 내몰리면서 금융권이 예찬하는 빚을 쉽게 이용했다. 심지어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마치 복지의 하나인 것처럼 선전되기도 했다.

결국 가계부채가 이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급기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선 ‘빚 탕감’이란 구호가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빚 탕감 공약이었던 국민행복기금은 선거 당시와는 달리 부정적인 여론 속에서 출범했다. 실제로 행복기금의 설계 운용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발표가 되면 될수록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 언론에서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문제를 삼았지만 행복기금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가장 큰 문제가 은행 눈치보기와 은행의 힘이 느껴지는 운용 방식이다.

빚이라는 것은 쌍방향의 계약이다. 빌려서 못 갚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무리하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게도 책임을 크게 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나서서 채무 조정을 한다는 것은 바로 쌍방향의 계약 당사자 모두의 책임을 공정하게 묻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기금은 오로지 채무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설계가 되었다. 은행연합회장이 국가의 공적 채무 조정 프로그램의 이사장을 겸직하는 것만 봐도 국민행복기금의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의 공적 프로그램의 최고 의사결정 권한을 사적 이익 단체의 대표가 행사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채무를 조정해준다고는 하지만 금융권이 사후에 이익을 나눠받을 수 있도록 설계됨으로써 채무 조정은 시늉에 그치고 또 하나의 채권 추심업이 나타날 위험까지 생겼다.

금융당국은 은행연합회장을 이사장으로 내정하고 금융권의 사후 이익 정산 내용을 포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은행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은행들의 눈치는 크게 보면서 결국 선거 공약을 누더기 헛공약으로 만들어낼 만큼 국민의 눈치는 보지 않는 것이다.

 

 



빚을 갚지 않는다는 채무자를 향한 손가락을 거둬 은행들의 반성없는 권력, ‘은행행복기금’으로 운용될 국민행복기금의 현 실태에 사회적 감시가 절실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 터무니없는 이자수입을 챙기고, 채무자를 가혹하게 옥죄는 중세시대라면 죄악에 해당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금융권뿐 아니라 납세자와 채무자 또한 대표로 국민행복기금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세금이 투입되지 않지만 기금 형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금이 전제되어 있다. 또한 채무자의 새출발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금융권의 또 다른 수입원으로 전락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이것이 금융소비자 단체들이 국민행복기금 국민감시단 을 출범시킨 이유이다.

<제윤경 | 에듀머니 대표>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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