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에게 도덕적 해이란 단어로 비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믿기 때문입니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핀란드의 한 여성이 어느 방송사의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구글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대표적인 의미를 ‘정부가 뒤를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하에서 혹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하에 정당한 리스크(위험)를 감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주로 기업 혹은 은행이 덩치를 키워놓으면 정부가 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험한 사업과 대출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도덕적 해이라는 단어가 은행보다는 주로 개인 채무자, 그것도 저소득·저신용 연체자를 향해 빈번하게 사용된다. 소득이 150만원인데 카드론 대출이 3개, 캐피털과 저축은행 신용대출이 각각 2개씩 있다면 돈을 빌린 사람과 빌려준 금융기관 중 누가 문제일까. 한국 사람들은 대개 채무자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감당하지 못할 빚을 겁없이 일으켰을까만 보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절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급전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 그에 비해 금융기관은 우리 모두가 개인적인 정보제공에까지 동의하면서 전문적인 신용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해줬다. 더 많은 금융환경 정보와 개인의 신용정보를 가지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신용평가를 해야 할 금융기관에서 저소득·저신용 개인에게 무분별하게 대출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미친 것이 아니라면 왜 이럴까’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맞다. 게다가 채무자가 사정을 해서 빌려준 것도 아니다. 마치 친절한 친구처럼 우대 고객처럼 떠받들며 ‘고객님 전화 한 통화로 1000만원까지 빌려드린다’고 불필요한 친절까지 베풀지 않았는가. 돈이 급한 사람에게 돈 빌려준다는 친절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갚을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절대 돈 빌리면 안된다’고 다짐하며 자신의 상환능력을 따져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분석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를 들여다보면 금융대출이 있는 저소득층이 156만4000가구이다.

그중에서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123만4000가구로 대출을 갖고 있는 가구 중 거의 80%가 절대 빈곤계층이다. 절대 빈곤계층이 생계비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돌려쓰고 카드론과 저축은행, 캐피털의 신용대출에 의존하고 산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이 빈곤계층에게 자선을 베푼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가계부채 정책 청문회를 진행했다. 청문회 중에는 저소득 계층의 금융소외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금융과잉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혼재됐다. 한마디로 의원들 중 여전히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실태 파악도 못한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연체 경험이 있는 저소득가구의 월 가처분소득은 73만8000원, 80만원도 채 안된다. 그에 비해 월 금융부채 상환 원리금이 78만2000원으로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소외를 지적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금융소외가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잉이 문제이다. 돈을 빌려준 금융사는 자선을 베푼 것이 아니다. 빈곤계층에게조차 20%이상의 고금리를 챙기는 약탈자이다.

 

 



채권 추심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빚을 갚아야만 한다는 강한 믿음 때문에 인권 침해도 용서한다. 따라서 저소득층은 더 높은 금리의 대출을 일으켜서라도 기존의 빚을 갚으려 한다. 혹은 연체자가 늘고 부실대출이 늘면 정부가 또 살려주지 않겠는가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것이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다.

<제윤경 | 에듀머니 대표>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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