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을 둘러싸고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그러나 정작 4월부터 시행한 국민행복기금은 그 성적이 대단히 초라하다 못해 잔인하다. 행복기금을 이용한 사람들의 평균소득이 연 564만원이었고 평균 채무금액은 1234만원, 연체 기간은 5년8개월이었다. 결국 행복기금은 월소득이 45만원인 사람들로부터 빚의 절반이라도 받아내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의 워크아웃보다 나은 면도 있다. 신복위의 워크아웃은 원금도 면책이 거의 안되는 상황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하고 전부 월 변제금으로 결정한다. 만약 행복기금 이용자가 신복위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이용했다면 평균소득(월 45만원)과 평균 부채(1234만원)를 가진 1인가구라고 전제했을 때 매월 13만여원을 8년간 상환해야 한다.

사실상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이지만 주변 지인으로부터 소득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전제로 8년의 기간(통상적으로 소득이 낮은 경우 8년을 적용한다)으로 부채 원금을 나눠 갚게 되는 것이다.

행복기금의 경우는 채무자가 상환기간을 정할 수 있다. 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50% 면책받게 되면 채무자는 월 5만원가량만 부담하면 된다. 이런 면에서는 신복위의 워크아웃보다 좀 더 인간적일 수 있다. 다만 월소득이 45만원인 가구가 그 몇 만원이라도 갚을 여력이 지속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명령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남편과 사별한 후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한 60대 여성의 소득은 월 60여만원이다. 그녀는 생계 곤란으로 인해 발생한 카드사 등의 빚 2800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2009년부터 신복위를 통해 워크아웃을 하고 있다. 당시에는 보험설계사를 시작하면서 좀 더 높은 소득이 가능하리라 여겼다. 소득을 실제 소득보다 높게 책정해 워크아웃 인가는 받았으나 매월 37만원씩 상환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 소득은 60여만원, 워크아웃 상환 금액이 소득의 60%가 넘어가면서 생활에 압박이 가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잠시 그나마의 소득도 중단됐다. 워크아웃은 다시 연체 상태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동시에 식당일까지 하겠다는 결심으로 부채 상환 계획을 문의한다.

60대의 나이에 두 개의 직업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오히려 중도에 병원비까지 추가로 발생할 위험도 적지 않다. 신복위의 워크아웃 프로그램 진행자이기 때문에 중도탈락한 상태라도 행복기금의 대상에서는 완전히 제외된다. 개인 워크아웃을 진행하려 해도 직업이 자영업 신분이기 때문에 소득인정 금액이 낮아 회생 인가는 거의 어렵다.

이런 경우 어차피 모든 채무 조정 프로그램에 해당되지도 않지만 설사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개인 파산과 면책 절차를 밟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파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다. 채무자 스스로도 파산 면책을 마치 사형선고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빚도 하나의 계약일 뿐이다.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삶의 기본권보다 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월소득이 60여만원인 사람에게 2800만원이나 빌려준 카드사와 저축은행, 대부업체는 처음부터 상환능력이 안되는 이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되었다. 금융사와 대부업체가 매몰차게 거절했다면 그녀는 불법 사채 시장에 손을 내밀었을까?

싱가포르처럼 전단, e메일 등 어떤 형태의 대부업 광고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녀는 빚에 의존하지 않고 구청 등 관공서를 통해 복지 수단을 찾았을 것이다. 최저생계비 근처의 소득자에게 수천만원을 빌려주는 우리 금융권과 대부업체는 천사가 아니다. 그들은 그녀가 밥을 굶어가며 혹은 지인들에게 절박하게 호소해서라도 빚을 갚을 것임을 알고 금리 30% 이상의 약탈적 대출을 했을 뿐이다.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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