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서 또다시 99%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앤드루 로스 뉴욕대 교수의 주도로 이뤄지는 빚 탕감운동이 그것이다. 오랫동안 빚을 연체하며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채무자는 이 단체로부터 놀랄 만한 메시지를 받는다.

‘당신의 채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고 당신은 갚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시장의 탐욕스러운 구조가 이 운동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월가 점령 시위 1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이 운동은 모금으로 마련한 7억원가량의 돈으로 150억원이 넘는 채권을 샀다. 연체 채권이 2차 시장에서 헐값에 사고 팔리는 구조를 이용한 것이다. 모금액으로 5%가 안되는 가격으로 채권을 매입해 바로 휴지로 만들었다.

이 운동은 개별 채무자의 빚 부담을 없애주겠다는 식의 시혜적 운동에 머물지 않는다. 시민으로부터 모금을 하고 채무자의 빚을 없애주는 과정에서 채권시장에서 이뤄지는 ‘빚 땡처리’ 현실을 고발한다. 대다수의 시민은 채권이 헐값에 거래되는 부실 채권시장에 대해 잘 모른다. 금융교육 중에 만난 사람들도 1000만원짜리 채권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은행들이 그 연체 채권을 대부업체 등에 겨우 몇 만원을 받고 팔아치운다고 설명해주면 크게 놀란다.

이 같은 현실은 세 가지 측면에서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아무리 연체를 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차후에 대부업체에서 빚 독촉을 한다는 사실이다.

두번째는 대부업체가 채무자에게 1000만원짜리 채권을 몇 만원에 매입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원금 전체를 받아내려 한다는 점이다. 회수율만 높다면 엄청난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이라는 면에서 황당해한다.

세번째는 대부업체에 헐값에 팔 거라면 왜 채무자와 직접 채무조정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아해진다. 채무자에게 이자와 원금의 일부를 줄여주거나 상환유예 혹은 상환기간 연장 등으로 채무를 조정해주면 연체 채권이라도 정상 채권으로 관리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예를 들면 빚을 1000만원가량 지고 있는 채무자에게 일시적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등의 재무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대다수 한국 사람은 가정 경제에 어려움이 발생할 경우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순식간에 빚이 불어나는 악순환에 빠진다. 만약 이때 은행에서 기존 빚에 대해 상환 유예를 해주는 정도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있다면 악순환을 최소화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 소득이 다시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은행도 채권을 정상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고 채무자 또한 재정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호주와 같은 선진국은 연체자에 대해 은행에서 여러 차례 채무조정을 해준다. 그에 비해 한국은 연체 채권을 대부업체나 자산관리 회사에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손쉽게 처리해 버린다. 여기서 금융 구조가 약탈적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기 시작한다.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국민행복기금 또한 사실상 빚 땡처리와 같은 구조에서 부실 채권을 매입해 신용 회복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민행복기금이 지난해 8월 말까지 매입한 채권의 가격은 원래 것의 3.72%였다. 100만원짜리 채권이라면 4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매입했다는 말이다. 미국의 빚 타파 운동과 달리 국민행복기금은 헐값에 매입해 빚의 30% 이상을 되돌려 받는다.


이런 이유로 국민행복기금은 돈이 남는 구조로 운영된다. 물론 이런 방식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돈이 남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그 남는 기금을 다시 다른 채권의 채무를 조정해 주는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행복기금은 수익이 발생하면 금융기관에 그 수익을 나눠주겠다는 식으로 설계돼 있다. 신용 회복 프로그램의 수익이 금융기관에 돌아가는 비즈니스 방식이라면 이는 국민행복기금이 아니라 은행행복기금이라 봐야 한다.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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