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년 연속 당기순이익 흑자, 4년 연속 8·8 클럽 유지’라는 광고 문구와 더불어 후순위채권을 소비자에게 무분별하게 판매했던 삼화저축은행이 파산했다. ‘8·8 클럽’이란 부실대출 비율이 8% 미만이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으로 저축은행의 재무상태가 건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삼화저축은행 직원들이 후순위 채권을 판매하면서 강조했던 당기 순이익 흑자와 8·8 클럽 유지는 사실이 아니었다. 명백한 거짓 판매를 했고, 이후 연이은 저축은행의 사기 판매와 영업정지 사태로 2만여명의 후순위채권 피해자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동양그룹 계열사의 부실한 채권을 소비자들에게 고수익을 미끼로 사기 판매함으로써 4만여명의 금융 피해자를 양산했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사는 사과했고, 금융감독 당국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책임은 없었다. 

한국의 언론 환경은 소나기와 같은 특성을 지녔다. 사고가 터진 당시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피해자들의 분노보다는 소비자의 부주의를 조명하는 등 기업 입장을 우회적으로 두둔하기도 한다. 


가령 저축은행이나 동양증권 사태에서도 사고가 드러난 초기에는 피해자의 억울한 사연과 금융회사 혹은 금융감독 당국의 비윤리성을 보도한다. 이후 이슈가 시들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투자자 책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다. 금융회사와 금융감독 당국은 한 차례 지나가는 소나기만 피하면 얼마든지 시스템 오류를 개별적인 문제로 화살을 돌릴 수 있다는 학습효과에 익숙해진 듯하다. 

‘윤리 경영이나 소비자 신뢰 같은 것을 신경이나 쓸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대형 금융사고가 터졌다. 대통령의 정보까지 유출된 불명예스럽고 비윤리적인 금융사고가 재현된 것이다. 물론 저축은행이나 동양 사태와는 성격이 다른 사고이다.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취급하는 금융사에서 소비자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스템도 마련하지 않은 채 영업을 해왔다. 

물론 이번 사태에 대해 전 국민이 분노하지만 자칫 이 사건도 과거 사건들처럼 소나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냉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솔직히 그간 암암리에 자신의 개인정보가 새나가고 있음을 감지할 만한 일은 충분했다. 

가령 자동차보험 만기 때가 되면 어김없이 보험 판매 대리점 여러 군데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이 가입한 대리점이라면 당연히 가입 정보를 바탕으로 영업을 할 것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대리점 혹은 영업점에서까지 전화가 걸려온다. 다소 예민한 소비자라면 ‘내 정보를 어떻게 알고 전화한 것이냐’라고 따져본다. 그렇게 까칠하게 반응하면 어떤 경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정보 수집 과정이 소비자에게 정당하게 밝힐 만한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의 가입 약정 기간이 다가올 때도 공짜폰에 대한 마케팅이 집중된다. 이렇게 자신의 개인정보가 여기저기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불안을 야기하고 경우에 따라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공포를 갖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런 불안과 공포도 일상이 되면 무뎌진다. 언론의 관심과 소비자의 분노가 정점을 찍고 나면 ‘그렇지 뭐. 제대로 된 게 하나라도 있겠어? 자기 정보 자기가 잘 관리해야지 뭐’하고 냉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 KB국민카드 본사 앞,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및 정부의 반복적인

무감독 무대책 규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촉구하는 서민금융 보호 단체 공동 기자회견>


게다가 기업의 책임을 묻기 위한 소비자들의 소송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판결이 난다. 최소 1~2년 걸리는 재판 기간은 국민들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충분하다. 국민적 관심이 소홀해진 사이 옥션의 개인정보 해킹 사건과 GS칼텍스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법원은 기업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일부 승소 판결이 난 경우도 있지만 한국 법원은 소비자들에게 가해질 정보 유출에 따른 고통과 피해보다는 기업에 줄 부담을 더 배려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이런 소나기 언론 환경과 금융감독 당국의 말뿐인 책임, 법원의 보수성이 결합해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가중시킨다. 이쯤되면 부도덕하게 영업해도 크게 혼날 일 없는 돈벌이 천국이 아닐까.

 


Posted by 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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