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장사꾼', '개성을 모르는 장사꾼', '야비하고 끔찍한 착취공장'

이 표현은 미국에 처음으로 저가 체인점들이 들어섰던 19세기 당시 사회개혁가들이 체인점 주인들을 향해 던진 말들이다. 19세기 미국의 사회개혁가들은 처음부터 대형 할인점에 대해 반감을 분명히 나타냈다. 보스턴대학교의 교수 엘렌 러펠 셸의 저작 <완벽한 가격>에는 미국의 소매상인 조합의 초기 회장이 체인점에 쏟아 부은 공격적인 말이 나온다.

할인 가격은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여러 소비자층의 구매력을 파괴하여 모든 계층에 영향을 미친다.

대형마트 입점에 환호하던 소비자들 '이건 좀 지나친데'

지하철 역 두 정류장을 사이에 두고 대형 할인 매장이 즐비한 서울을 떠올려 보자. 대형마트들이 상권을 잠식해 나가는 동안 대부분 소비자들은 중소상인들의 몰락을 외면했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대형 마트들이 동네마다 하나 둘씩 생겨날 때 상당수 사람들은 할인 가격에 다양한 상품을 소비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마트에 몰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대형 마트는 인근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쳤고 사람들은 점점 대형 마트 입점을 마치 횡재처럼 여기기까지 했다. 대형 할인점에 대한 우려나 경계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시민단체조차 대형 할인점이 상권을 장악해 가는 동안 그것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 것인지 예측하지 못했다. 저렴하게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서민 경제를 위해 당장의 동네 소상공인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최근에는 일자리도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창업에 나서는 소상공인들이 재벌 2세들의 떡볶이, 순대 사업 진출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가격만 저렴하다면 동네 조그만 가게들이라도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이 소비자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외면하던 소비자들도 '이건 좀 지나치다'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런 민심의 변화흐름이 최근 지방정부의 조례 개정에 힘을 보태기 시작한 듯하다. 전주시에서 시작해 서울시까지 최근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규제의 칼을 들었다.

규제의 내용은 물론 '칼'이라고 표현하기 무색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월 2회 휴무와 야간 영업 금지를 담고 있다. 지방정부가 굳이 나서 규제하지 않아도 건강한 기업 문화를 위한 상식 수준의 내용이다. 그러나 대형 마트는 그에 대해 '헌법 소원'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저항한다.

할인의 유혹으로 독점에 성공하다

대형 할인점이 지방정부의 소극적인 규제조차 헌법까지 들고 나오며 저항하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규제가 영업권 침해라고 여기는 듯 하나 대형마트의 그간의 영업 행위는 그 자체가 지역 소상공인들의 영업권을 침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물론 그 어떤 법적, 제도적 권력이 동원된 침해행위는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자율에 내맡긴 공정한 경쟁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력과 마케팅 전문성, 제조업체 독점 등을 생각한다면 과연 공정한 경쟁이었는지 따져볼 일이다. 정부의 제도 규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의 힘이다. 돈의 힘은 이미 골목에서 수년간 지역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영업을 해온 지역 상인들을 쉽게 몰아내 버렸다.

물론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형마트의 마케팅 능력을 선택한 것은 바로 소비자라는 점에서 비난의 화살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난감하다. 당연히 대형마트는 모든 핑계를 소비자의 선택으로 돌린다. 그 핑계가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할인 전략으로 독점이라는 시장지배 전략을 가졌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매력적인 곳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그러한 자본 경쟁력으로 중소상인을 전부 몰아낸 다음 그때도 대형마트가 과연 소비자들에게 저가의 친절을 유지할까. 이미 소비자들은 초기 대형마트가 입점하기 시작한 당시에 비해 대형 할인점들의 싸구려 전략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다. 여전히 대량으로 판매하지만 할인의 폭은 줄어들고 때로 중량을 속이는 등의 눈속임 전략만 가득하다.

주차도 마음껏 하게 해주던 예전과 달리 구매 금액과 시간을 비례해 주차요금을 정산하기 시작한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한 때 대형 마트는 싸구려 스릴을 경험할 유용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싸구려 스릴을 즐기기 위해 주차료까지 부담할지 모른다. 결국 필요 없는 것도 무료 주차료에 맞는 영수증을 위해 카트에 담아야 한다.

대형마트에서 소비하면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을 사오게 된다는 것도 소비자들은 경험을 통해 자각하고 있다. 할인 적용해 주는 듯하지만 대량으로 판매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동네 슈퍼를 이용할 때와 전혀 다른 장바구니 무게를 안겨 주었다. 결국 중소상인도 밀어내고 소비자들의 지갑도 텅비게 만들었다.

동전의 양면... 싸구려 절약인가 낭비인가

대형마트의 독점은 소비자들이 누리던 저가 소비 편리성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지역상권이 무너지면서 소비자들은 찌개를 끓이다가 마늘이 떨어진 사실을 알고 차를 끌고 대형마트까지 가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두통약 하나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한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동네 슈퍼보다 저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절대 절약이 아니다. 동네 슈퍼에서는 1리터짜리 생수를 낱개로 구매할 수 있지만 '싸구려 스릴'은 몇 백원 더 저렴하게 판다는 이유로 최소 6개 묶음으로 소비할 것을 강요한다. 결국 라면이든 치약이든 박스 채 구입해서 좁은 집에 보관하느라 가족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도 넓은 집이 필요하고 수납공간이 과학적으로 설계된 아파트에 살지 못한다는 일상의 박탈감에 시달려야 한다.

냉장고 크기도 점점 커지고 다 소비하지 못한 식재료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잘 따져보면 대형 마트에서 대량 소비한 것들로 인해 우리는 추가로 공간비용과 전기요금, 쓰레기 처리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싸구려를 구매함으로써 절약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대량 소비로 불필요한 소비가 일상화된 셈이다.



까르푸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파리 시내에 까르푸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북유럽에서는 보수적인 소상인들조차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한편 영세상인의 몰락에 맞서는 데 적극적이라고 한다. 사실상 우리는 소비자임과 동시에 노동자다. 지역 상인은 노후의 나의 일자리, 우리 아이들의 소박한 꿈일 수 있다. 골목까지 장악해 모든 돈벌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대기업이 우리를 평생 고용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퇴직금으로 노후에 조그만 슈퍼라도 하겠다는 꿈도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파티셰를 꿈꾸는 아이들 또한 동네에서 아침마다 고소한 빵냄새 풍기는 빵집을 꿈꿀 수 없다. 이쯤되면 미국의 소매상인협회 회장의 말에 공감이 간다.

할인전략에 속아 노동의 가치는 떨어졌고 줄어드는 일자리로 소비자 구매력 또한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비해 전주시와 서울시의 대형마트 규제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잃고 있는 것에 비해 그것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대형마트는 이제라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중소상인과 소비자들과 더불어 상생하기 위한 자기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지방정부의 솜방망이 규제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Posted by 제윤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